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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탐구

대한제국에는 진령군, 제정러시아에는 라스푸틴! 얼마 후 둘다 망했다.

by 라 lahh 2023. 3. 16.

대한제국에 진령군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당시 진령군 세상을 다스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제정러시아에는 라스푸틴 신부가 있었다. 라스푸틴이 러시아를 다스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나라 모두 망했다.

 

 

 

진령군

도망가는 민비와 충청도 무당의 만남

1882년 임오년 6월 구식 군대 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신식 군대 별기군과의 차별대우. 구식 군대는 1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다가 겨우 1개월치 녹봉을 받았는데 그 나마도 모래가 80% 이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혜청(쌀, 포, 동전의 출납을 관할하던 곳) 관리자가 민비의 인척 민겸호(시어머니의 동생, 시외삼촌)였는데 구식군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 군란을 조종한 인물은 권력에서 밀려난 흥선 대원군이다. 성난 군인들에 의해 민겸호는 죽임을 당했지만 민비는 야반도주에 성공해 충주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의 집으로 도망간다. 그 때 민비는 신통방통한 한 여인을 만난다. 후일 ‘진령군’이라 불린 이 여인은 피난 생활을 하던 민비에게 그해 8월 보름 즈음 환궁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군란 15일 후 청나라는 난의 책임을 물어 흥선대원군을 압송해 갔다. 무당 박창렬이 말했던 날짜보다는 보름이 늦긴 했지만 어쨌든 민비는 환궁에 성공한 것이다.

 

 

무당 '진령군'의 출세

이 일을 계기로 충주 무당 박창렬은 벼락 출세를 한다. 고종과 민비는 평소 무속과 점술을 좋아했던 지라 이 여인을 궁에서 끼고 살았다. 스스로를 관운장의 딸이라 하는 이 여인에게 고종은 ‘진령군’이라는 호까지 하사한다. 그런데 진령군은 꼬장꼬장한 조선 선비들의 눈쌀에 궁살이가 부담스러웠는지, 이듬해인 1883년 궁의 북쪽에 있에 관우의 사당을 만들겠다며 궁에서 나왔다. 북묘 자리는 조선 시대 노론들의 스승 송시열의 집터였다. 무당이긴 했지만 터 보는 눈도 있었던 듯 싶다. 혜화초등학교 근처의 주택가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에 이 사당을 북묘라 불렀는데 그 사당을 만들게 된 경위는 중앙박물관 동쪽 마당에 있는 비석에 적혀 있다. 고종과 민비의 꿈에 관운장이 나타나 나라를 살렸기에 사당을 짓는다는 내용이고, 북묘가 완성되자 고종과 세자는 함께 가서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다. 

 

북묘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페이지
송시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들이 꼬인다.

 

북묘 건립 이듬해 1884년 갑신년에 또 한번의 난이 일어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옥균의 갑신정변, 이 때 고종과 민비는 북묘로 피신해서 목숨을 건지니 민비 입장에서 진령군은 두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된 것이다. 고종과 민비가 돌아간 후 북묘에는 벼슬과 돈을 노리는 양아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이들은 진령군과 자매를 맺기도 하고 양아들로 삼아달라는 이도 많았다.

그 중 가장 재밌는 일화는 이유인이라는 수양아들의 이야기다. 김해사람 이유인은 무관을 꿈꾸며 상경을 했는데, 어느날 진령군을 북한산으로 유인했다고 한다. 그 때 진령군 앞에 건달들이 분장한 귀신들이 나왔고, 이유인이 귀신을 다스리는 능력을 보여준 후 진령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고 한다.


속은 척 해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하의 진령군은 그 일 이후 이유인과 북묘에서 함께 지냈다. 사람들의 입에는 그렇고 그런 소문도 끊이지 않았는데 수양아들인지 정인(情人)인지는 확인할 바 없다. 이들은 후일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쌀 한 섬과 돈 열 냥씩 바치면 나라가 평안하다’며 고종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고종이 그 청을 들어주니 권력은 물로 돈도 꽤 가졌을 듯 싶다.

 

윤치호의 일기에는 당시 지석영 선생이 올린 상소 내용이 나온다.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이 세상 사람들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한다.’ 또,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과 안효제도 ‘북묘의 요망한 계집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렸다. 고종은 민비는 상소를 올린 이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안효제는 섬으로 유배형을 보냈다. 이 상소문을 올린시기가 임오군란 12년 후인 1894년이니 12년이상 진령군이 국정을 좌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령군의 죽음

진령군의 시대는 1895년 일본 깡패들에게 의해 민비가 시해된 후 끝을 맺는다. 군인들에의해 진령군은 거열형을 받았다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형이 집행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수양아들 이유인은 양주목사를 비롯 법부대신까지 올랐다가 1907년 직권 남용 형의로 체포되자 놀라 죽었다고 한다. 진령군의 북묘는 1910년 폐쇄된다.

 

라스푸틴의 등장


진령군의 수양아들 이유인이 죽은 그 해 1907년에는 제정 러시아에서의 괴승 라스푸틴이 황태자의 병을 고쳐주며 황실에 입성하는 해이기도 한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진령군이 대한제국을 해 먹은 후 서쪽 제정러시아에서 비슷한 일이 시작된 것이다. 

 

무속인들을 지금까지 이야기한 사기꾼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잘 되지 않는 시기, 무속인들의 말이 힘을 얻고, 그 주위에 사기꾼들이 모여들어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환경이 되기에 진령군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망국은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여러 이유로 힘들었고 그 시기 무속인이 권력을 쥐었다.

즉 '어려울 때 사기꾼들은 꼬인다'는 의미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어디가서 어렵다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푸틴 이야기는 여기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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