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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사회 보드리아르, 당신은 무엇을 버리는가 그게 당신이다!

by 라 lahh 2024. 3. 4.

보드리야르의 책 ‘쓰레기통의 사회학’에서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당신을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버리는가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소비의 사회에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비닐봉투보드리아르초상

 

  

 

소비의 사회 보드리아르

비닐백의 역설

위의 사진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에서 2018년에 나왔던 상품입니다. 평소에 사용하던 소모품인 비닐백입니다.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은 약 80만 원대였습니다. 상품자체가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 때문이었을까요?

 

보드리아르

보드리아르 프랑스 태생입니다. 학부시절 전공은 독일어입니다. 마르크스의 저작과, 그 계열의 학자들 책을 주로 프랑스어로 번역을 했었습니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

 

장 보드리야르(1929 ~ 2007)는 현대 사회를 ‘소비 사회’로 규정하였습니다. 현대 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품의 기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기호(=이미지)를 소비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스타벅스가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바로 스타벅스라는 의견입니다. 우리는 소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기능)가 아니라, 상품의 이미지(브랜드)를 산다는 겁니다.

 

마르크스주의자 보드리아르

보드리아르는 현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설명을 시도합니다. 마르크스가 근대의 자본주의를 분석했다면 보드리아르는 현대 자본주의 분석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주류 경제학에서도 케인즈가 나오기 전을 고전학파(스미스주의자)라고 합니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아담 스미스(고전학파)적 사고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은 케인즈의 출현이였습니다. 고전학파의 생산 중심의 경제학에서, 이젠 소비! 즉, 수요 중심의 경제학으로 바뀝니다. 마르크스는 저서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저서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입니다. 마르크스도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산이 문제가 아니다, 소비가 문제다

결국 마르크스도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처럼 자본주의를 생산측면에서 분석합니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도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생산측면이 아닌, 소비측면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고전학파적 사고가 지배하던 즉, 생산, 공급 중시의 경제학에서는 한번쯤은 들어봤던 세이의 법칙이 적용되던 시대입니다.

 

가장 단순히 말한다면 ‘만들면 팔린다!’라고 믿던 시대, 생산량 극대화가 목표인 시대였습니다. 만들면 팔리니까요. 그리고 산업사회 초기에는 생산량만 늘어나면 보다 풍요로워 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생산성이란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가장 최고의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시대

자본주의는 드디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생산성을 보이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젠 생산성의 증가로 수요를 넘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산이 지속될 수 있을까요?

 

신발이 없던 시대에, 신발의 기능를 강조하며 신발을 만들면 팔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신발이 없는 집이 없게 되었다면, 어떻게 신발을 더 팔수 있을까요? 하물며,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 신발이 없는 집이, 옷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풍요롭다고 느끼지 않으며,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않는 사회가 되었을까요?

 

이 설명을 하는게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입니다.

 

소비의 사회

산업사회, 즉, 자본주의 초기에는 상품의 기능인, 사용가치(유용성 = 쓸모)를 중시여기고 생산자는 기능(사용가치)를 만들고 소비자는 기능(사용가치)를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상품의 기능(사용가치)가 아닌 기호(이미지)를 소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집집마다 옷이 없어서 또 사는게 아니죠. 신발이 없어서 또 사는게 아닙니다. 계절 바뀔때마다 경험합니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생산자는 신발 있는 자에게 신발을, 옷 있는 자에게 옷을 팔아야 하는 겁니다.

 

이젠 상품의 기능(사용 가치)를 팔아서는 팔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기호 (이미지)을 파는 거죠. 그래서 소비자는 신발 사는게, 아니라 브랜드를 산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사는 겁니다.

 

그럼 그 상품의 이미지는 맞습니다. 광고가 창출합니다. 광고를 통해 위대한 슈퍼스타를 통해, 환상의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이젠 운동화가 없어서 운동화 사는 시대가 아닙니다. 시대적 코드 입힙니다. 나이키 조던, 리미티드 ~

우리에게 늘 소비를 독촉합니다.

 

과거의 광고는 기능(사용가치)를 광고했었습니다. 냉장고 없던 시대에는, 냉장고의 문을 열어 냉장고의 기능을 설명했지만 예쁜 여인이나 미남이 나와 지금은 냉장고는 보여만 주고 옆에 있는 사람이나 배경들과 어우러져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미지만 보여주는 거죠.

 

소비의 계급화 

현대에는 소비를 통해, 타인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차별성을 위해 구매를 합니다. 상류층은 달아나기 위해 즉, 하위층과의 차별, 거리두기를 위해. 그럼 하류층은요? 같아지기 위해, 상류층을 따라가기 위해, 비슷해지기 위해... 이렇게 자신의 존재,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의 소비가 되버린 사회입니다.

  

남들과의 차이 차별성을 위해 소비하다 보니 이젠 소비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가 됩니다. 

 

루이뷔통이 파는 것은 핸드백이 아니라 바로 루이뷔통입니다. 루이비통이 가방의 기능을 더 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가치를 사는겁니다. 부자들은 내가 부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루이비통이라는 기호를 사고 가난한자는 가난을 숨기기 위해 루이비통이라는 기호를 사죠

결국 개나 소나 루이비통을 둘고 다니게 되고, 그럼 부자들은 이제 더 비싼 에르메스라는 기호를 사고, 가난한 자들은 에르메스의 기호를 사기 위해 바둥 댑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실체

보드리야르는 ‘현대 자본주의는 생산질서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고 싶어하는 것(욕구)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보드리야르는 아니라는 겁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자들이 ~ 지들이 팔고 싶은 것 팔고 있다는 겁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어 많은 패션회사, 또는 그곳의 디자이너들에게 방송에서 묻습니다.

올 가을 예상되는 패션은?

사실 그걸 어떻게 알까요? 어쩌면 디자이너들이 유행시키고 싶은 모양이지 않을까요? 결국 현대 소비사회는, 이러한 소비 욕구를 발생시키는 생산 질서가 의도하는 대로 소비하게 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박탈당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필요가 충족되게 되면 자본주의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겹핍, 필요를 만들어내야 자본주의는 돌아갑니다. 필요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하게 함으로써 겹핍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우리를 부족하다고 느끼고, 갖고 싶도록 욕망하게 해야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생산을 하고 그에 따라 돈을 벌게 될테니까요.

        

1987년 미국의 제 1세대 페미니즘 미술가인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 작품은 크루거 특유의 붉은색 굵은 글씨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따온 것으로 소비 지상주의에 빠진 (80년대) 사회를 비판합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을 존재의 근거로 삼았지만 현대인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닌 쇼핑, 소비로 존재를 확인받는다고 비판하고 잇습니다. 

쇼핑

 

 

쓰레기통의 사회학

보드리아르의 또 다른 책은 ‘쓰레기통의 사회학’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당신을 표현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버리는가에 달려 있다는 건데요, 이건 부촌의 쓰레기통을 뒤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쓸모 있는데 이걸 버려?’ 아직 쓸만한데, 물론 이것들은 사용가치가 남아 있는 그러니 쓸모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품의 용도(=기능)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을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합니다. 결국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시대가 현대 소비사회라는 겁니다. 

 

물론 보드리야르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처럼 혁명해라! 이런 과격한 제안은 하지는 않습니다. 보드리아르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자본주의 체제는 소비하지 않으면 저절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글. 이병철